1926년,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파산 직전에 몰린 독일의 네 광학 회사 — 에르네만(Ernemann)과 ICA(드레스덴), 콘테사-네텔(Contessa-Nettel, 슈투트가르트), 괴르츠(Goerz, 베를린) — 가 예나의 카를 차이스 재단의 자본 투입으로 하나로 합병된다. 1926년 10월 1일 탄생한 차이스 이콘(Zeiss Ikon AG)은 단번에 세계 최대의 사진·영화 장비 회사가 되었고, 본사는 드레스덴에 자리잡았다.
차이스 이콘과 카를 차이스 렌즈는 재단이라는 하나의 지붕 아래 있는 형제였다. 차이스 이콘의 모든 카메라에는 카를 차이스 렌즈(전설적인 테사르, 1929년 루트비히 베르텔레가 설계한 조나)가 장착되었고, 이전에 에르네만과 괴르츠가 자체 생산하던 렌즈 공장은 폐쇄되었다. 차이스 유리, 차이스 바디, 컴푸르 셔터 — 이 수직 통합 생태계가 세계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냈다.
영사기 부문의 유산은 특히 풍부하다. 하인리히 에르네만이 1897년 드레스덴의 샨다우어 거리에 세운 공장에서 1909년 첫 국제 사진전에 출품한 임페라토르(Imperator) — 혁신적인 올스틸 35mm 영사기 — 는 합병 후 차이스 이콘 브랜드로 계승되었다. 에르네만 시리즈(I~VII), 에르논(Ernon) 극장용 영사기, 키녹스(Kinox) 16mm 휴대용 영사기, 파보릿 8(Favorit 8) 가정용 영사기 등이 이어졌다.
카메라 쪽에서는 1932년 라이카에 맞서 출시한 콘탁스(Contax)가 가장 유명했고, 영화 카메라로는 차이스 조나 렌즈를 장착한 모비콘(Movikon) 시리즈가 있었다. 그러나 1945년 2월 드레스덴 폭격으로 공장이 파괴되었고, 소련군이 남은 생산 라인을 전부 키예프로 가져가 '키예프(Kiev)' 브랜드로 수십 년간 생산했다.
냉전은 차이스 이콘을 둘로 쪼갰다. 서독의 슈투트가르트 공장은 콘탁스 IIa/IIIa, 콘타플렉스 SLR 시리즈를 생산했으나, 일본 카메라의 급부상에 밀려 1972년 카메라 생산을 중단했다. 동독의 드레스덴 공장은 펜타콘(Pentacon)이라는 이름으로 재출발해 프락티카(Praktica) SLR과 극장용 영사기를 만들었다. 에르네만의 드레스덴 공장 건물은 현재 독일 위생 박물관(Deutsches Hygiene-Museum) 부지에 남아있어, 한 세기 전 이곳이 세계 영화 기술의 중심지였음을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