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에 학교를 그만둔 소년, 앙투안 외르티에(Antoine Heurtier). 그가 정규 교육 없이 독학으로 쌓아올린 기계 설계 실력은 1937년, 획기적인 시제품으로 결실을 맺는다 — 8mm, 9.5mm, 16mm 세 가지 필름 규격을 하나의 기계로 상영할 수 있는 트리 포맷 영사기였다. 당시 각 규격마다 별도의 영사기가 필요했던 시장에 이 '쉬퍼트리(Supertri)'는 충격이었고, 1938년 프랑스 상공부 금메달을 수상했다.
1938년 형 장(Jean)과 공동 경영자 몽지로(Montgiraud)와 함께 생테티엔에서 회사를 설립한 외르티에는, 이 무기·자전거·리본 제조의 도시에 정밀 영화 장비라는 새로운 산업을 더했다. 전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스퀘어 루즈벨트의 새 공장으로 이전하면서 성장이 시작된다.
1954년 자기 사운드 장착 모노손(Monoson)과 쉬퍼르손(Superson)을 파리 사진·영화 살롱에서 선보이며 사운드 영사기 시대를 열었고, 1950년대 후반에는 시네마스코프 호환 파노라뤽스(Panoralux)로 가정에 와이드스크린을 가져왔다. 1955년에는 카메라 제조에도 진출했다.
성장 곡선은 놀라웠다. 1959년 연간 300대이던 생산량은 1970년 4만 대로 130배 폭증했고, 종업원은 230명에 달했다. 앙투안 외르티에 개인이 보유한 특허만 65개, 전 세계 40개국에 누적 50만 대 이상을 수출했다.
Super 8 시대에는 P6-24 시리즈가 주력 제품이 되었고, 1973년 스테레오 42(Stereo 42)는 슈나이더-크로이츠나흐 렌즈와 스테레오 자기 재생 기능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했다. 1976년의 스테레오복스(Stereovox)는 외르티에의 마지막 걸작이었다 — f/1.1 슈나이더 렌즈, 2×15W 스테레오 앰프, 세 개의 자기 헤드. 수집가들이 '스팀펑크 영사기'라 부르는 이 기계의 위압적인 산업 디자인은 지금도 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1976년 이후 외르티에라는 이름은 카탈로그에서 사라졌다. VHS(1976)와 베타맥스(1975)가 필름 상영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소규모 전문 제조사가 일본과 독일의 대기업에 맞서 가격 경쟁을 벌이기는 불가능했다. 1981년 공식 폐업. 하지만 생테티엔의 이 작은 공방이 43년간 세계 가정용 영화에 남긴 발자취 — 트리포맷이라는 개념 자체 — 는 영사기 역사에서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