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논(Chinon)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리뷰(Revue), GAF, 시어스(Sears), 아거스(Argus), 하니멕스(Hanimex)라는 이름으로 카메라를 산 사람은 수없이 많다. 이 브랜드들의 뒤에는 모두 같은 공장이 있었다.
1948년 9월, 치노 히로시가 나가노현 치노시에 산신세이사쿠쇼(三信製作所)를 설립해 카메라 렌즈 프레임과 경통을 만들기 시작했다. 1954년 본사를 스와로 이전한 이 회사는 일본의 '동양의 스위스' — 세이코/엡손, 야시카 등 정밀 광학·시계 기업이 밀집한 스와호 분지의 제조 생태계에 합류했다.
1956년 8mm 무비카메라용 렌즈를 만들기 시작했고, 1959년에는 세계 최초의 8mm 무비카메라용 줌렌즈를 개발한다. 1962년부터 자체 브랜드 8mm/Super 8 카메라를 수출하기 시작했고, Super 8 영사기 라인업(2500, 4000GL, 6000/6100, 7500/7800, 사운드 8000 시리즈)도 구축했다. 1967년의 유니버설 8(Universal 8)은 일반 8mm와 신규격 Super 8을 모두 재생할 수 있었다.
1970년대에는 35mm SLR 카메라(주로 펜탁스 K마운트)로 영역을 넓혔고, 1981년 일본 최초의 근적외선 자동초점 시스템, 1983년 세계 최초의 트윈 프로그램 SLR을 선보이며 기술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치논의 진짜 정체는 OEM 공장이었다. 1966년부터 1989년까지 치논이 만든 카메라가 수십 개의 브랜드 이름으로 팔려나갔다. GAF의 SLR 전 모델이 치논제였고, 독일 포토큐엘레의 리뷰(Revue)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닥과의 관계는 1985년 35mm 카메라 OEM에서 시작해 1993년 디지털 카메라로 확대되었다.
치논은 극적으로 파산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이름을 잃었다. 캐논, 니콘, 미놀타의 자동초점 혁명에 중소 제조사가 버틸 수 없었고, 1990년대에 '치논' 브랜드는 매장에서 사라졌지만 공장은 코닥을 위해 계속 돌아갔다. 2004년 코닥이 완전 흡수하면서 치논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 달에 6만 대의 카메라를 만들었지만 자기 이름을 붙이지 못한 공장 — 그것이 치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