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렉스의 이야기는 스위스 공장이 아닌 키예프에서 시작된다. 1895년 12월 31일, 러시아 제국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야코프 보고폴스키(Yakov Bogopolsky)는 1913년경 제네바로 건너와 의학을 공부하다 공학으로 전향한다. 1914년부터 개발한 '시네그라프 볼(Cinegraphe Bol)' — 35mm 필름으로 촬영, 인화, 상영이 모두 가능한 역전 장치 — 을 1923년 제네바 박람회에서 선보였고, 그의 성(姓)에서 따온 '볼렉스(Bolex)'라는 이름은 이렇게 탄생했다.

1925년 보고폴스키와 사업가 샤를 하시우스가 제네바에 볼렉스 SA를 설립했으나, 실제로 카메라를 만든 것은 롱진(시계 제조사)이었고 영사기는 스토파니가 제작했다. 볼렉스는 브랜드였을 뿐 공장은 없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파야르(Paillard & Cie)다. 1814년 생트크루아에서 모이즈 파야르가 설립한 이 회사는 시계, 오르골(1875~1905년 스위스 최대), 축음기(1898), 에르메스 타자기(1913)를 거치며 스위스 정밀 제조업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1930년, 파야르는 볼렉스 SA를 35만 스위스 프랑에 인수하고 보고폴스키를 5년간 자문으로 고용한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파야르가 인수해보니 보고폴스키의 특허는 사실상 사용 불가능했고 기계에는 결함이 있었다. 2년 안에 보고폴스키는 더 이상 생트크루아에 환영받지 못했다. (보고폴스키 본인은 미국으로 건너가 볼시(Bolsey) 카메라를 만들다 1962년 롱아일랜드에서 사망한다.)

세계가 아는 볼렉스는 보고폴스키의 작품이 아니다. 파야르의 자체 엔지니어 마르크 르노(Marc Renaud)가 에르네스트 쥐야르 교수와 함께 처음부터 새로 설계한 것이다. 1935년 출시된 파야르-볼렉스 H16은 스위스 시계 제조의 정밀성을 영화 카메라에 이식한 걸작이었다. 태엽식 스프링 모터(한 번 감으면 약 20초 촬영), 12~64fps 가변 속도, 단일 프레임 촬영(애니메이션·과학 촬영용), 역감기, 가변 셔터, 삼렌즈 터렛 — 전기 없이 어디서든 촬영할 수 있었다.

1956년 H16 리플렉스는 10개의 프리즘을 통한 스루더렌즈 뷰파인더를 장착하여 촬영 혁명을 일으켰다. 이 기계는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예술적 유산도 남겼다. 앤디 워홀은 볼렉스로 《엠파이어》와 《잠》을 촬영했고, 스탠 브래키지의 실험영화, 마야 데런의 전위영화가 모두 H16으로 탄생했다. 요나스 메카스, 니콜라스 로에그, 데이비드 린치도 볼렉스를 사용했다.

파야르는 카메라뿐 아니라 영사기도 만들었다. 18-5 시리즈(8mm), G/M 시리즈 등이 있었고, 생트크루아의 공장에서 오르골 제조의 정밀성으로 조립되었다. 1970년대 비디오의 부상과 함께 생산이 줄었고, 1980년대에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하지만 H16은 지금도 실험 영화와 아날로그 영화 제작자들의 손에서 현역으로 돌아가고 있다.

주요 연혁

1895 야코프 보고폴스키(훗날 볼렉스 창시자) 키예프에서 출생
1923 시네그라프 볼(Cinegraphe Bol) 제네바 박람회 출품
1925 볼렉스 SA 제네바에 설립
1930 파야르(Paillard)가 볼렉스 SA를 35만 프랑에 인수
1935 파야르-볼렉스 H16 출시 — 전설의 시작
1938 H8(더블 8mm) 출시
1956 H16 리플렉스 — 10개 프리즘 스루더렌즈 뷰파인더 혁명
1961 앤디 워홀, 볼렉스로 첫 영화 촬영 시작
1970s 비디오 시대에 밀려 생산 축소
1980s 파야르-볼렉스 생산 종료. H16은 실험영화 진영에서 현역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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