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시카고 — 당시 할리우드가 존재하기 전, 미국 영화 산업의 중심지였다. 극장 영사기사 도널드 벨(Donald J. Bell)은 초기 영사 장비의 잦은 고장과 필름 걸림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미시간 벌목 지대 출신의 젊은 기계공 앨버트 하월(Albert S. Howell)은 이미 26세에 35mm 키노드롬 영사기 개선 특허를 출원한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5,000달러의 자본금으로 벨 앤 하월을 설립한다.

이 회사의 천재성은 정밀 공학을 영화에 적용한 것이었다. 1908년 개발한 필름 천공기는 35mm 필름 스톡에 균일한 스프로킷 구멍을 뚫었다 — 이전에는 제조사마다 구멍 크기가 달라 영사 중 필름이 튀고 찢어졌다. '벨 앤 하월 천공(BH perfs)'이라 불리는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구멍은 카메라 네거티브 필름의 국제 표준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전 세계의 모든 35mm 네거티브가 이 규격을 따른다.

1912년 출시한 벨 앤 하월 2709 — 35mm 전문 스튜디오 카메라 — 는 '역사상 가장 정밀한 필름 메커니즘'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46년간 생산되었다. 1919년까지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사용되는 장비의 거의 100%가 벨 앤 하월제였다. 찰리 채플린이 《키드》(1921)와 《황금광 시대》(1925)를 2709로 촬영했고, 월트 디즈니는 약 1914년산 2709로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1937)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다.

그러나 회사 내부는 순탄치 않았다. 1917년 벨은 하월과 재무담당 맥낼을 해고했지만, 이튿날 두 사람이 서류를 들고 돌아와 벨의 지분을 약 20만 달러에 매입했다. 벨은 52세에 은퇴했고, 이름만 회사에 영원히 남았다.

1923년 출시한 필모 70(Filmo 70)은 최초의 16mm 스프링 모터 구동 카메라로, 가정용 영화 촬영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열었다. 1925년의 아이모(Eyemo)는 100피트 필름 용량의 초소형 35mm 카메라로, 그 견고함 때문에 뉴스릴과 전투 카메라맨의 선택이 되었다. 2차 대전 중 해병대 데이비드 더글러스 덩컨과 노먼 해치 상사가 아이모로 촬영한 타라와 전투 영상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직접 승인을 받아야 공개될 수 있었고,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필모사운드(Filmosound) 영사기 라인은 16mm 광학 사운드 상영을 가능하게 하여 수십 년간 교육·군사 훈련 영화 상영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일본 제조사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1979년 카메라·영사기 제조를 중단했다.

주요 연혁

1907 도널드 벨·앨버트 하월, 시카고에서 5,000달러로 설립
1908 필름 천공기 개발 — BH 천공이 세계 표준이 됨
1912 벨 앤 하월 2709 출시 — 46년간 생산된 전설의 35mm 카메라
1917 벨 퇴출, 하월이 20만 달러에 지분 인수
1923 필모 70(Filmo 70) — 최초의 16mm 스프링 모터 카메라
1925 아이모(Eyemo) — 초소형 35mm 전투·뉴스릴 카메라
1934 최초의 아마추어 8mm 영사기 출시
1944 아이모로 촬영한 타라와 전투 영상, 아카데미상 수상
1979 카메라·영사기 제조 중단

컬렉션 소장품

모든 제조사 이야기 전체 소장품 보기